1978년 일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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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8년 일본 시리즈는 1978년 10월 14일부터 10월 22일까지 7차전으로 진행되었으며,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한큐 브레이브스를 4승 3패로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7차전에서 오스기 가쓰오의 홈런 판정을 둘러싸고 한큐 측의 1시간 19분간의 항의가 있었는데, 이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장 시간 항의로 기록되었다. 이 시리즈는 야쿠르트의 첫 우승과 홈런 판정 논란으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MVP는 오스기 가쓰오, 감투상은 아다치 미쓰히로, 최우수 투수상은 마쓰오카 히로무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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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일본 시리즈 | |
---|---|
1978년 일본 시리즈 | |
일반 정보 | |
국가 | 일본 |
연도 | 1978년 |
날짜 | 10월 14일–22일 |
우승팀 | |
우승팀 | 야쿠르트 스왈로스 (4) |
우승 횟수 | 첫 우승 |
우승팀 리그 | CL |
우승팀 감독 | 히로오카 다쓰로 |
우승팀 시즌 성적 | 68승 46패 16무 (시즌 1위) |
우승팀 승리수 | 4 |
준우승팀 | |
준우승팀 | 한큐 브레이브스 (3) |
준우승팀 리그 | PL |
준우승팀 감독 | 우에다 도시하루 |
준우승팀 시즌 성적 | 82승 39패 9무 (전기/후기 1위) |
준우승팀 승리수 | 3 |
MVP 및 수상 | |
MVP | 오스기 가쓰오 (야쿠르트) |
감투상 | 아다치 미쓰히로 (한큐) |
텔레비전 및 라디오 | |
심판 |
2. 경기 일정 및 결과
1978년 일본 시리즈는 10월 14일부터 10월 22일까지 7차전으로 진행되었다.
일시 | 경기 | 원정팀(선공) | 스코어 | 홈팀(후공) | 개최 구장 | 개시 시각 | 경기 시간 | 관중수 |
---|---|---|---|---|---|---|---|---|
10월 14일(토) | 1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6 - 5 | 야쿠르트 스왈로스 | 고라쿠엔 구장 | 13시 01분 | 2시간 51분 | 34,218명 |
10월 15일(일) | 2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6 - 10 | 야쿠르트 스왈로스 | 13시 00분 | 3시간 41분 | 39,406명 | |
10월 16일(월) | 이동일 | |||||||
10월 17일(화) | 3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0 - 5 | 한큐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13시 01분 | 2시간 29분 | 20,296명 |
10월 18일(수) | 4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6 - 5 | 한큐 브레이브스 | 13시 00분 | 3시간 12분 | 20,456명 | |
10월 19일(목) | 5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7 - 3 | 한큐 브레이브스 | 13시 00분 | 3시간 9분 | 18,298명 | |
10월 20일(금) | 이동일 | |||||||
10월 21일(토) | 6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12 - 3 | 야쿠르트 스왈로스 | 고라쿠엔 구장 | 13시 00분 | 3시간 35분 | 44,956명 |
10월 22일(일) | 7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0 - 4 | 야쿠르트 스왈로스 | 13시 00분 | 4시간 7분 | 36,359명 | |
우승: 야쿠르트 스왈로스(첫 우승) |
=== 1차전 ===
10월 14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선발 야마다 히사시의 호투와 타카이 야스히로, 가와무라 겐이치로의 홈런에 힘입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6-5로 꺾고 첫 승을 거두었다.
한큐는 2회초 야마다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었으나, 야쿠르트는 3회말 후나다 가즈히데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다. 5회초 한큐는 타카이 야스히로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지만, 야쿠르트는 5회말 후나다의 솔로 홈런, 6회말 찰리 매뉴엘과 오야 아키히코의 연속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말에도 야쿠르트는 스기우라 토루의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8회초, 한큐는 시마타니 킨지의 2점 적시타와 대타 카와무라 겐이치로의 2점 홈런으로 재역전에 성공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선발 야마다 히사시는 10안타를 허용하며 고전했지만, 9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넘기며 완투승을 거두었다. 야마다의 169구 투구는 연장전을 제외한 일본 시리즈 최다 투구 기록이다.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한큐 | 0 | 1 | 0 | 0 | 1 | 0 | 0 | 4 | 0 | 6 | 10 | 2 |
야쿠르트 | 0 | 0 | 1 | 0 | 1 | 2 | 1 | 0 | 0 | 5 | 10 | 1 |
- 승리 투수: 야마다 히사시(1-0)
- 패전 투수: 야스다 다케시(0-1)
- 홈런:
- 한큐: 타카이 야스히로(5회 1점), 가와무라 겐이치로(8회 2점)
- 야쿠르트: 후나다 가즈히데(5회 1점), 찰리 매뉴엘(6회 1점), 오야 아키히코(6회 1점)
경기 시간은 2시간 51분, 관중은 34,218명이였다.
=== 2차전 ===
10월 15일 - 고라쿠엔 구장 (입장자: 39,406명)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
한큐 | 1 | 0 | 0 | 1 | 0 | 0 | 3 | 0 | 1 | 6 | 14 | 0 |
야쿠르트 | 0 | 2 | 4 | 1 | 0 | 2 | 0 | 1 | X | 10 | 11 | 1 |
- 승리 투수: 마쓰오카 히로무(1승)
- 패전 투수: 이마이 유타로(1패)
- 홈런:
- 한큐: 후쿠모토 유타카(1회 1점, 마쓰오카 히로무), 바비 마르카노(7회 3점, 마쓰오카 히로무)
- 야쿠르트: 찰리 매뉴엘(2회 2점, 이마이 유타로), 스미 후지오(6회 1점, 미에다 노리에쓰), 오스기 가쓰오(8회 1점, 이나바 미쓰오)
- 경기 시간: 3시간 41분
1회 초에 한큐는 후쿠모토 유타카의 선두 타자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다. 하지만 야쿠르트는 2회 말에 찰리 매뉴엘의 2경기 연속 2점 홈런으로 역전했다. 야쿠르트는 3회 말에 우중간 방향으로 5안타를 쏟아내 4점을 얻으며 이마이 유타로를 강판시켰다. 4회에 양 팀이 1점씩 추가한 후, 6회 말에 야쿠르트는 교체 출전한 스미 후지오가 미에다 노리에쓰로부터 솔로 홈런을, 그리고 오스기 가쓰오의 적시타로 9-2로 점수를 벌렸다.
한편 한큐는 7회 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마쓰오카 히로무를 상대로 바비 마르카노가 추격의 3점 홈런을 날리며 마쓰오카 히로무를 강판시켰다.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은 "저렇게 많은 점수를 얻었으니 '맡겨두라'는 투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부진한 에이스를 한탄했다[12]. 그러나 8회 말에 오스기 가쓰오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두 자릿수로 만든 야쿠르트는 2번째 투수인 이하라 신이치로가 9회 초의 위기를 1점으로 막아내 승리를 굳혔다.
다음 날 이동일 훈련에서 한큐의 야마구치 다카시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사토 요시노리도 팔꿈치 통증으로 결장한 한큐의 투수진은 순식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 3차전 ===
10월 17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열린 3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선발 아다치 미쓰히로의 완봉승에 힘입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5-0으로 꺾었다.
1회말 가토 히데시의 땅볼로 한큐가 선취점을 올렸고, 3회말에도 가토 히데시의 중전 안타로 1점을 추가했다. 두 점 모두 후쿠모토 유타카의 도루가 기여했다. 4회말에는 시마타니 킨지의 적시타로 3-0이 되었고, 7회말에는 나카자와 신지의 2점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아다치 미쓰히로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후반을 제대로 뛰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5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선보였고, 3안타만을 허용하며 완벽투를 펼쳤다. 특히 9회초에는 스미 후지오, 와카마츠 츠토무, 오스기 가쓰오를 모두 투수 땅볼로 잡아내며 전년도 시리즈 2차전에 이어 2경기 연속 완봉승(일본 시리즈 타이 기록)을 기록했다. 1976년 제7차전부터 이어진 시리즈 연속 무실점 기록도 21이닝으로 늘렸다.
경기 시간은 2시간 29분이었으며, 관중은 20,296명이 입장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78_3.html 공식 기록 관계](일본 야구 기구 페이지)
=== 4차전 ===
10월 18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열린 4차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데이브 힐튼의 9회 역전 2점 홈런에 힘입어 한큐 브레이브스를 6-5로 꺾었다.[3]
경기는 한큐가 1회말 마르카노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고, 2회말에는 나카자와 신지, 이마이 유타로, 미노다 코지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추가하며 4-0으로 앞서나갔다. 5회말에도 미노다의 3루타를 시작으로 1점을 추가하며 야쿠르트 선발 야스다 타케시를 조기 강판시켰다.
야쿠르트는 6회초 반격에 나섰다. 후나다 카즈히데의 유격수 땅볼 때 2루 주자 나가오 타이켄의 센스있는 플레이로 오하시의 실책을 유도하며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이후 와카마쓰 쓰토무의 적시타, 오스기 가쓰오와 마니엘의 내야 땅볼, 스기우라 도루의 적시타로 1점 차까지 추격했다.
9회초, 야쿠르트는 1사 후 미즈타니 신타로가 안타로 출루했다.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은 대타 이세 타카오를 기용하고 미즈타니에게 도루 사인을 냈지만, 미즈타니는 도루에 실패했다.[14] 그러나 이세가 내야 안타로 출루하며 기회를 이어갔다. 한큐의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마이 유타로는 완투 의지를 밝혔고, 우에다는 이를 받아들였다.[15] 다음 타자 힐튼은 초구를 노려 좌측 럭키존으로 넘어가는 역전 2점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를 뒤집었다.[3]
9회말 야쿠르트는 마무리 마쓰오카 히로무를 투입해 경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한큐는 선두 타자 가와무라 겐이치로가 안타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가 1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후쿠모토가 1루에 생존했다. 미노다의 타석 때 후쿠모토가 도루를 시도했지만, 마쓰오카의 빠른 퀵 모션과 오야 아키히코의 정확한 송구로 저지당했다.[16] 마쓰오카는 마지막 타자 미노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5점 차를 뒤집은 야쿠르트의 극적인 승리는 시리즈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3] 한편, 한큐의 우에다 감독은 이 경기의 투수 교체 실패를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꼽았으며, 당시 구원 투수였던 야마다 히사시는 "우에다 감독의 실패"라고 평가했다.[5][17] 힐튼의 홈런은 양 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단 한 개의 공으로 경기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5][6][18][19]
=== 5차전 ===
10월 19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입장자: 18,298명)
1 | 2 | 3 | 4 | 5 | 6 | 7 | 8 | 9 | 득점 | 안타 | 에러 | |
---|---|---|---|---|---|---|---|---|---|---|---|---|
야쿠르트 | 2 | 0 | 0 | 0 | 0 | 1 | 0 | 1 | 3 | 7 | 14 | 0 |
한큐 | 0 | 0 | 0 | 1 | 0 | 0 | 1 | 1 | 0 | 3 | 5 | 0 |
- '''승리 투수''': 이하라 신이치로(1-0)
- '''패전 투수''': 야마다 히사시(1-1)
- '''세이브''': 마쓰오카 히로무(2S)
- '''홈런'''
- * 야쿠르트: 와카마쓰 쓰토무(8회 1점), 오스기 가쓰오(9회 3점)
- * 한큐: 바비 마르카노(8회 1점)
경기 시간: 3시간 9분
한큐의 선발은 4일 간격으로 등판한 야마다였다. 야쿠르트의 선발은 마쓰오카라는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카지마 겐이치였다.[21] 야마다는 초반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야쿠르트 타선에 1회부터 공략당해 오스기의 2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허용했다. 한편, 한큐는 3회까지 야쿠르트의 선발 카지마에게 노히트에 묶여 있었지만, 4회에 드디어 카지마를 공략하여 2사 만루에서 두 번째 투수 이하라의 폭투로 1점을 만회했다. 6회 초에 야쿠르트가, 7회 말에 한큐가 각각 1점을 추가했다. 8회 초에 야쿠르트가 와카마쓰의 우월 홈런으로 점수를 벌리자, 한큐도 그 이닝 말에, 연투인 마쓰오카로부터 마르카노가 좌월 홈런을 쳐 4-3으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9회 초, 야쿠르트는 마쓰오카의 내야 안타로 만든 2사 1, 2루에서 오스기가 3점 홈런을 터뜨려 7-3으로 달아났다. 야마구치가 투입되지 않았고, 야마다를 끝까지 던지게 한 한큐와는 대조적으로, 연투한 마쓰오카의 활약으로 야쿠르트가 먼저 챔피언 결정전에 1승을 남겨두게 되었다.
야쿠르트 벤치는 이 경기를 처음부터 계투로 풀어나갈 계산이었다.[21] 전날 경기 종료 후, 이날 선발 후보를 4명으로 추린 후, 그 중에서 이 날 경기 전에 코바야시 구니오와 카지마 2명으로 압축해 카지마의 선발을 결정했다.[21] 야쿠르트 벤치로서는 카지마가 한큐의 타순이 한 바퀴 돌 때까지만 버텨주면 된다고 계산했지만, 카지마는 4회 1사까지 노히트라는 예상 외의 호투를 보여주며 야쿠르트의 계투 운용을 수월하게 했다.
=== 6차전 ===
10월 21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978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나카자와 신지(3회 3점), 시마타니 긴지(5회 1점), 버니 윌리엄스(5회 1점), 후쿠모토 유타카(5회 2점)의 홈런을 앞세워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12-3으로 크게 이겼다.[22]
선발 투수 시라이시 시즈오는 9이닝 동안 3실점 5피안타로 완투승을 거두며 한큐의 승리를 이끌었다.[22] 야쿠르트 선발 스즈키 야스지로는 3회에 볼넷으로 무너진 후 시마타니 긴지, 윌리엄스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고, 나카자와 신지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는 등 6실점하며 부진했다.[23] 5회에는 니시이 테츠오가 시마타니 긴지, 윌리엄스, 후쿠모토 유타카에게 3개의 홈런을 맞는 등 5실점 하였다.[23]
야쿠르트 타선은 후나다 가즈히데가 5회에 2점 홈런을 쳤지만, 시라이시 시즈오를 공략하지 못하고 3득점에 그쳤다.
이 경기는 3시간 35분 동안 진행되었으며, 44,95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한큐는 2차전을 제외한 5경기에서 완투를 기록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78_6.html 경기 상세 결과] (일본 야구 기구)
=== 7차전 ===
10월 22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978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한큐 브레이브스'''를 4-0으로 꺾고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1]
선발 마쓰오카 히로무는 9이닝 동안 7안타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두며(2승 2세이브) 야쿠르트의 승리를 이끌었다.[24] 반면 한큐 선발 아다치 미쓰히로는 5회 1/3이닝 동안 1실점(5회말 힐튼에게 적시 내야 안타 허용) 후 강판되었다.[24] 아다치의 시리즈 연속 무실점 기록은 25이닝에서 멈췄다.
6회말, 야쿠르트 오스기 가쓰오가 아다치에게서 좌측 폴대 상단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쳤다.[2][18][19][25][26][27][28] 이 홈런은 폴대 위를 통과했는지에 대한 판정 논란이 있었고,[11][29] 당시 비디오 판독이 없었기에[11][30] 심판 판정에 대한 한큐의 항의가 이어졌다. 한큐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맹렬하게 항의하며 선수단을 철수시키기도 했으나,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 항의로 인해 경기는 1시간 19분(14시 54분부터 16시 13분) 동안 중단되었으며, 이는 일본 시리즈 사상 최장 시간 중단 기록이다.
항의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사이, 한큐는 아다치 대신 마쓰모토 마사시를 투입했으나, 야쿠르트 찰리 매뉴엘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3-0으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18][19][26] 8회말에는 오스기가 야마다 히사시를 상대로 또 하나의 솔로 홈런(2타석 연속)을 추가하며 4-0을 만들었다.[26]
결국 야쿠르트가 4-0으로 승리하며, 구단 창단 29년 만에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33] 마쓰오카는 완봉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마지막 타자 이노우에 오사무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되었다.[33]
경기 종료 후 스왈로스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은 헹가래를 받았다.
이 경기는 데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45.6%, 최고 61.5%(간토 지구)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26]
투수 | 기록 |
---|---|
마쓰오카 히로무 | 9이닝 7피안타 완봉승 |
아다치 미쓰히로 | 5 1/3이닝 1실점 |
마쓰모토 마사시 | 2/3이닝 1실점 |
야마다 히사시 | 2이닝 1실점 |
선수 | 기록 |
---|---|
오스기 가쓰오 | 6회 솔로 홈런, 8회 솔로 홈런 |
찰리 매뉴엘 | 6회 솔로 홈런 |
D. 힐튼 | 5회 적시 내야 안타 |
2. 1. 경기 결과 요약
wikitable일시 | 경기 | 원정팀(선공) | 스코어 | 홈팀(후공) | 개최 구장 | 개시 시각 | 경기 시간 | 관중수 |
---|---|---|---|---|---|---|---|---|
10월 14일(토) | 1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6 - 5 | 야쿠르트 스왈로스 | 고라쿠엔 구장 | 13시 01분 | 2시간 51분 | 34,218명 |
10월 15일(일) | 2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6 - 10 | 야쿠르트 스왈로스 | 13시 00분 | 3시간 41분 | 39,406명 | |
10월 16일(월) | 이동일 | |||||||
10월 17일(화) | 3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0 - 5 | 한큐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13시 01분 | 2시간 29분 | 20,296명 |
10월 18일(수) | 4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6 - 5 | 한큐 브레이브스 | 13시 00분 | 3시간 12분 | 20,456명 | |
10월 19일(목) | 5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7 - 3 | 한큐 브레이브스 | 13시 00분 | 3시간 9분 | 18,298명 | |
10월 20일(금) | 이동일 | |||||||
10월 21일(토) | 6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12 - 3 | 야쿠르트 스왈로스 | 고라쿠엔 구장 | 13시 00분 | 3시간 35분 | 44,956명 |
10월 22일(일) | 7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0 - 4 | 야쿠르트 스왈로스 | 13시 00분 | 4시간 7분 | 36,359명 | |
우승: 야쿠르트 스왈로스(첫 우승) |
2. 2. 각 경기 상세 결과
일시 | 경기 | 원정팀(선공) | 스코어 | 홈팀(후공) | 개최 구장 | 개시 시각 | 경기 시간 | 관중수 |
---|---|---|---|---|---|---|---|---|
10월 14일(토) | 1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6 - 5 | 야쿠르트 스왈로스 | 고라쿠엔 구장 | 13시 01분 | 2시간 51분 | 34,218명 |
10월 15일(일) | 2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6 - 10 | 야쿠르트 스왈로스 | 13시 00분 | 3시간 41분 | 39,406명 | |
10월 16일(월) | 이동일 | |||||||
10월 17일(화) | 3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0 - 5 | 한큐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13시 01분 | 2시간 29분 | 20,296명 |
10월 18일(수) | 4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6 - 5 | 한큐 브레이브스 | 13시 00분 | 3시간 12분 | 20,456명 | |
10월 19일(목) | 5차전 | 야쿠르트 스왈로스 | 7 - 3 | 한큐 브레이브스 | 13시 00분 | 3시간 9분 | 18,298명 | |
10월 20일(금) | 이동일 | |||||||
10월 21일(토) | 6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12 - 3 | 야쿠르트 스왈로스 | 고라쿠엔 구장 | 13시 00분 | 3시간 35분 | 44,956명 |
10월 22일(일) | 7차전 | 한큐 브레이브스 | 0 - 4 | 야쿠르트 스왈로스 | 13시 00분 | 4시간 7분 | 36,359명 | |
우승: 야쿠르트 스왈로스(첫 우승) |
10월 14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선발 야마다 히사시의 호투와 타카이 야스히로, 가와무라 겐이치로의 홈런에 힘입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6-5로 꺾고 첫 승을 거두었다.
한큐는 2회초 야마다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었으나, 야쿠르트는 3회말 후나다 가즈히데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다. 5회초 한큐는 타카이 야스히로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지만, 야쿠르트는 5회말 후나다의 솔로 홈런, 6회말 찰리 매뉴엘과 오야 아키히코의 연속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말에도 야쿠르트는 스기우라 토루의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8회초, 한큐는 시마타니 킨지의 2점 적시타와 대타 카와무라 겐이치로의 2점 홈런으로 재역전에 성공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선발 야마다 히사시는 10안타를 허용하며 고전했지만, 9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넘기며 완투승을 거두었다. 야마다의 169구 투구는 연장전을 제외한 일본 시리즈 최다 투구 기록이다.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한큐 | 0 | 1 | 0 | 0 | 1 | 0 | 0 | 4 | 0 | 6 | 10 | 2 |
야쿠르트 | 0 | 0 | 1 | 0 | 1 | 2 | 1 | 0 | 0 | 5 | 10 | 1 |
- 승리 투수: 야마다 히사시(1-0)
- 패전 투수: 야스다 다케시(0-1)
- 홈런:
- 한큐: 타카이 야스히로(5회 1점), 가와무라 겐이치로(8회 2점)
- 야쿠르트: 후나다 가즈히데(5회 1점), 찰리 매뉴엘(6회 1점), 오야 아키히코(6회 1점)
경기 시간은 2시간 51분, 관중은 34,218명이였다.
10월 15일 - 고라쿠엔 구장 (입장자: 39,406명)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
한큐 | 1 | 0 | 0 | 1 | 0 | 0 | 3 | 0 | 1 | 6 | 14 | 0 |
야쿠르트 | 0 | 2 | 4 | 1 | 0 | 2 | 0 | 1 | X | 10 | 11 | 1 |
- 승리 투수: 마쓰오카 히로무(1승)
- 패전 투수: 이마이 유타로(1패)
- 홈런:
- 한큐: 후쿠모토 유타카(1회 1점, 마쓰오카 히로무), 바비 마르카노(7회 3점, 마쓰오카 히로무)
- 야쿠르트: 찰리 매뉴엘(2회 2점, 이마이 유타로), 스미 후지오(6회 1점, 미에다 노리에쓰), 오스기 가쓰오(8회 1점, 이나바 미쓰오)
- 경기 시간: 3시간 41분
1회 초에 한큐는 후쿠모토 유타카의 선두 타자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다. 하지만 야쿠르트는 2회 말에 찰리 매뉴엘의 2경기 연속 2점 홈런으로 역전했다. 야쿠르트는 3회 말에 우중간 방향으로 5안타를 쏟아내 4점을 얻으며 이마이 유타로를 강판시켰다. 4회에 양 팀이 1점씩 추가한 후, 6회 말에 야쿠르트는 교체 출전한 스미 후지오가 미에다 노리에쓰로부터 솔로 홈런을, 그리고 오스기 가쓰오의 적시타로 9-2로 점수를 벌렸다.
한편 한큐는 7회 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마쓰오카 히로무를 상대로 바비 마르카노가 추격의 3점 홈런을 날리며 마쓰오카 히로무를 강판시켰다.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은 "저렇게 많은 점수를 얻었으니 '맡겨두라'는 투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부진한 에이스를 한탄했다[12]. 그러나 8회 말에 오스기 가쓰오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두 자릿수로 만든 야쿠르트는 2번째 투수인 이하라 신이치로가 9회 초의 위기를 1점으로 막아내 승리를 굳혔다.
다음 날 이동일 훈련에서 한큐의 야마구치 다카시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사토 요시노리도 팔꿈치 통증으로 결장한 한큐의 투수진은 순식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0월 17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열린 3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선발 아다치 미쓰히로의 완봉승에 힘입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5-0으로 꺾었다.
1회말 가토 히데시의 땅볼로 한큐가 선취점을 올렸고, 3회말에도 가토 히데시의 중전 안타로 1점을 추가했다. 두 점 모두 후쿠모토 유타카의 도루가 기여했다. 4회말에는 시마타니 킨지의 적시타로 3-0이 되었고, 7회말에는 나카자와 신지의 2점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아다치 미쓰히로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후반을 제대로 뛰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5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선보였고, 3안타만을 허용하며 완벽투를 펼쳤다. 특히 9회초에는 스미 후지오, 와카마츠 츠토무, 오스기 가쓰오를 모두 투수 땅볼로 잡아내며 전년도 시리즈 2차전에 이어 2경기 연속 완봉승(일본 시리즈 타이 기록)을 기록했다. 1976년 제7차전부터 이어진 시리즈 연속 무실점 기록도 21이닝으로 늘렸다.
경기 시간은 2시간 29분이었으며, 관중은 20,296명이 입장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78_3.html 공식 기록 관계](일본 야구 기구 페이지)
10월 18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열린 4차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데이브 힐튼의 9회 역전 2점 홈런에 힘입어 한큐 브레이브스를 6-5로 꺾었다.[3]
경기는 한큐가 1회말 마르카노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고, 2회말에는 나카자와 신지, 이마이 유타로, 미노다 코지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추가하며 4-0으로 앞서나갔다. 5회말에도 미노다의 3루타를 시작으로 1점을 추가하며 야쿠르트 선발 야스다 타케시를 조기 강판시켰다.
야쿠르트는 6회초 반격에 나섰다. 후나다 카즈히데의 유격수 땅볼 때 2루 주자 나가오 타이켄의 센스있는 플레이로 오하시의 실책을 유도하며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이후 와카마쓰 쓰토무의 적시타, 오스기 가쓰오와 마니엘의 내야 땅볼, 스기우라 도루의 적시타로 1점 차까지 추격했다.
9회초, 야쿠르트는 1사 후 미즈타니 신타로가 안타로 출루했다.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은 대타 이세 타카오를 기용하고 미즈타니에게 도루 사인을 냈지만, 미즈타니는 도루에 실패했다.[14] 그러나 이세가 내야 안타로 출루하며 기회를 이어갔다. 한큐의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마이 유타로는 완투 의지를 밝혔고, 우에다는 이를 받아들였다.[15] 다음 타자 힐튼은 초구를 노려 좌측 럭키존으로 넘어가는 역전 2점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를 뒤집었다.[3]
9회말 야쿠르트는 마무리 마쓰오카 히로무를 투입해 경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한큐는 선두 타자 가와무라 겐이치로가 안타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가 1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후쿠모토가 1루에 생존했다. 미노다의 타석 때 후쿠모토가 도루를 시도했지만, 마쓰오카의 빠른 퀵 모션과 오야 아키히코의 정확한 송구로 저지당했다.[16] 마쓰오카는 마지막 타자 미노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5점 차를 뒤집은 야쿠르트의 극적인 승리는 시리즈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3] 한편, 한큐의 우에다 감독은 이 경기의 투수 교체 실패를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꼽았으며, 당시 구원 투수였던 야마다 히사시는 "우에다 감독의 실패"라고 평가했다.[5][17] 힐튼의 홈런은 양 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단 한 개의 공으로 경기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5][6][18][19]
10월 19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입장자: 18,298명)
1 | 2 | 3 | 4 | 5 | 6 | 7 | 8 | 9 | 득점 | 안타 | 에러 | |
---|---|---|---|---|---|---|---|---|---|---|---|---|
야쿠르트 | 2 | 0 | 0 | 0 | 0 | 1 | 0 | 1 | 3 | 7 | 14 | 0 |
한큐 | 0 | 0 | 0 | 1 | 0 | 0 | 1 | 1 | 0 | 3 | 5 | 0 |
- '''승리 투수''': 이하라 신이치로(1-0)
- '''패전 투수''': 야마다 히사시(1-1)
- '''세이브''': 마쓰오카 히로무(2S)
- '''홈런'''
- * 야쿠르트: 와카마쓰 쓰토무(8회 1점), 오스기 가쓰오(9회 3점)
- * 한큐: 바비 마르카노(8회 1점)
경기 시간: 3시간 9분
한큐의 선발은 4일 간격으로 등판한 야마다였다. 야쿠르트의 선발은 마쓰오카라는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카지마 겐이치였다.[21] 야마다는 초반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야쿠르트 타선에 1회부터 공략당해 오스기의 2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허용했다. 한편, 한큐는 3회까지 야쿠르트의 선발 카지마에게 노히트에 묶여 있었지만, 4회에 드디어 카지마를 공략하여 2사 만루에서 두 번째 투수 이하라의 폭투로 1점을 만회했다. 6회 초에 야쿠르트가, 7회 말에 한큐가 각각 1점을 추가했다. 8회 초에 야쿠르트가 와카마쓰의 우월 홈런으로 점수를 벌리자, 한큐도 그 이닝 말에, 연투인 마쓰오카로부터 마르카노가 좌월 홈런을 쳐 4-3으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9회 초, 야쿠르트는 마쓰오카의 내야 안타로 만든 2사 1, 2루에서 오스기가 3점 홈런을 터뜨려 7-3으로 달아났다. 야마구치가 투입되지 않았고, 야마다를 끝까지 던지게 한 한큐와는 대조적으로, 연투한 마쓰오카의 활약으로 야쿠르트가 먼저 챔피언 결정전에 1승을 남겨두게 되었다.
야쿠르트 벤치는 이 경기를 처음부터 계투로 풀어나갈 계산이었다.[21] 전날 경기 종료 후, 이날 선발 후보를 4명으로 추린 후, 그 중에서 이 날 경기 전에 코바야시 구니오와 카지마 2명으로 압축해 카지마의 선발을 결정했다.[21] 야쿠르트 벤치로서는 카지마가 한큐의 타순이 한 바퀴 돌 때까지만 버텨주면 된다고 계산했지만, 카지마는 4회 1사까지 노히트라는 예상 외의 호투를 보여주며 야쿠르트의 계투 운용을 수월하게 했다.
10월 21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978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나카자와 신지(3회 3점), 시마타니 긴지(5회 1점), 버니 윌리엄스(5회 1점), 후쿠모토 유타카(5회 2점)의 홈런을 앞세워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12-3으로 크게 이겼다.[22]
선발 투수 시라이시 시즈오는 9이닝 동안 3실점 5피안타로 완투승을 거두며 한큐의 승리를 이끌었다.[22] 야쿠르트 선발 스즈키 야스지로는 3회에 볼넷으로 무너진 후 시마타니 긴지, 윌리엄스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고, 나카자와 신지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는 등 6실점하며 부진했다.[23] 5회에는 니시이 테츠오가 시마타니 긴지, 윌리엄스, 후쿠모토 유타카에게 3개의 홈런을 맞는 등 5실점 하였다.[23]
야쿠르트 타선은 후나다 가즈히데가 5회에 2점 홈런을 쳤지만, 시라이시 시즈오를 공략하지 못하고 3득점에 그쳤다.
이 경기는 3시간 35분 동안 진행되었으며, 44,95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한큐는 2차전을 제외한 5경기에서 완투를 기록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78_6.html 경기 상세 결과] (일본 야구 기구)
10월 22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978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한큐 브레이브스'''를 4-0으로 꺾고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1]
선발 마쓰오카 히로무는 9이닝 동안 7안타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두며(2승 2세이브) 야쿠르트의 승리를 이끌었다.[24] 반면 한큐 선발 아다치 미쓰히로는 5회 1/3이닝 동안 1실점(5회말 힐튼에게 적시 내야 안타 허용) 후 강판되었다.[24] 아다치의 시리즈 연속 무실점 기록은 25이닝에서 멈췄다.
6회말, 야쿠르트 오스기 가쓰오가 아다치에게서 좌측 폴대 상단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쳤다.[2][18][19][25][26][27][28] 이 홈런은 폴대 위를 통과했는지에 대한 판정 논란이 있었고,[11][29] 당시 비디오 판독이 없었기에[11][30] 심판 판정에 대한 한큐의 항의가 이어졌다. 한큐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맹렬하게 항의하며 선수단을 철수시키기도 했으나,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 항의로 인해 경기는 1시간 19분(14시 54분부터 16시 13분) 동안 중단되었으며, 이는 일본 시리즈 사상 최장 시간 중단 기록이다.
항의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사이, 한큐는 아다치 대신 마쓰모토 마사시를 투입했으나, 야쿠르트 찰리 매뉴엘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3-0으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18][19][26] 8회말에는 오스기가 야마다 히사시를 상대로 또 하나의 솔로 홈런(2타석 연속)을 추가하며 4-0을 만들었다.[26]
결국 야쿠르트가 4-0으로 승리하며, 구단 창단 29년 만에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33] 마쓰오카는 완봉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마지막 타자 이노우에 오사무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되었다.[33]
경기 종료 후 스왈로스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은 헹가래를 받았다.
이 경기는 데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45.6%, 최고 61.5%(간토 지구)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26]
투수 | 기록 |
---|---|
마쓰오카 히로무 | 9이닝 7피안타 완봉승 |
아다치 미쓰히로 | 5 1/3이닝 1실점 |
마쓰모토 마사시 | 2/3이닝 1실점 |
야마다 히사시 | 2이닝 1실점 |
선수 | 기록 |
---|---|
오스기 가쓰오 | 6회 솔로 홈런, 8회 솔로 홈런 |
찰리 매뉴엘 | 6회 솔로 홈런 |
D. 힐튼 | 5회 적시 내야 안타 |
2. 2. 1. 1차전
10월 14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선발 야마다 히사시의 호투와 타카이 야스히로, 가와무라 겐이치로의 홈런에 힘입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6-5로 꺾고 첫 승을 거두었다.한큐는 2회초 야마다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었으나, 야쿠르트는 3회말 후나다 가즈히데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다. 5회초 한큐는 타카이 야스히로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리드를 잡았지만, 야쿠르트는 5회말 후나다의 솔로 홈런, 6회말 찰리 매뉴엘과 오야 아키히코의 연속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7회말에도 야쿠르트는 스기우라 토루의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8회초, 한큐는 시마타니 킨지의 2점 적시타와 대타 카와무라 겐이치로의 2점 홈런으로 재역전에 성공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선발 야마다 히사시는 10안타를 허용하며 고전했지만, 9회말 2사 만루 위기를 넘기며 완투승을 거두었다. 야마다의 169구 투구는 연장전을 제외한 일본 시리즈 최다 투구 기록이다.
팀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한큐 | 0 | 1 | 0 | 0 | 1 | 0 | 0 | 4 | 0 | 6 | 10 | 2 |
야쿠르트 | 0 | 0 | 1 | 0 | 1 | 2 | 1 | 0 | 0 | 5 | 10 | 1 |
- 승리 투수: 야마다 히사시(1-0)
- 패전 투수: 야스다 다케시(0-1)
- 홈런:
- 한큐: 타카이 야스히로(5회 1점), 가와무라 겐이치로(8회 2점)
- 야쿠르트: 후나다 가즈히데(5회 1점), 찰리 매뉴엘(6회 1점), 오야 아키히코(6회 1점)
경기 시간은 2시간 51분, 관중은 34,218명이였다.
2. 2. 2. 2차전
10월 15일 - 고라쿠엔 구장 (입장자: 39,406명)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
---|---|---|---|---|---|---|---|---|---|---|---|---|
한큐 | 1 | 0 | 0 | 1 | 0 | 0 | 3 | 0 | 1 | 6 | 14 | 0 |
야쿠르트 | 0 | 2 | 4 | 1 | 0 | 2 | 0 | 1 | X | 10 | 11 | 1 |
- 승리 투수: 마쓰오카 히로무(1승)
- 패전 투수: 이마이 유타로(1패)
- 홈런:
- 한큐: 후쿠모토 유타카(1회 1점, 마쓰오카 히로무), 바비 마르카노(7회 3점, 마쓰오카 히로무)
- 야쿠르트: 찰리 매뉴엘(2회 2점, 이마이 유타로), 스미 후지오(6회 1점, 미에다 노리에쓰), 오스기 가쓰오(8회 1점, 이나바 미쓰오)
- 경기 시간: 3시간 41분
1회 초에 한큐는 후쿠모토 유타카의 선두 타자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다. 하지만 야쿠르트는 2회 말에 찰리 매뉴엘의 2경기 연속 2점 홈런으로 역전했다. 야쿠르트는 3회 말에 우중간 방향으로 5안타를 쏟아내 4점을 얻으며 이마이 유타로를 강판시켰다. 4회에 양 팀이 1점씩 추가한 후, 6회 말에 야쿠르트는 교체 출전한 스미 후지오가 미에다 노리에쓰로부터 솔로 홈런을, 그리고 오스기 가쓰오의 적시타로 9-2로 점수를 벌렸다.
한편 한큐는 7회 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마쓰오카 히로무를 상대로 바비 마르카노가 추격의 3점 홈런을 날리며 마쓰오카 히로무를 강판시켰다.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은 "저렇게 많은 점수를 얻었으니 '맡겨두라'는 투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부진한 에이스를 한탄했다[12]. 그러나 8회 말에 오스기 가쓰오의 솔로 홈런으로 점수를 두 자릿수로 만든 야쿠르트는 2번째 투수인 이하라 신이치로가 9회 초의 위기를 1점으로 막아내 승리를 굳혔다.
다음 날 이동일 훈련에서 한큐의 야마구치 다카시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사토 요시노리도 팔꿈치 통증으로 결장한 한큐의 투수진은 순식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 2. 3. 3차전
10월 17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열린 3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선발 아다치 미쓰히로의 완봉승에 힘입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5-0으로 꺾었다.1회말 가토 히데시의 땅볼로 한큐가 선취점을 올렸고, 3회말에도 가토 히데시의 중전 안타로 1점을 추가했다. 두 점 모두 후쿠모토 유타카의 도루가 기여했다. 4회말에는 시마타니 킨지의 적시타로 3-0이 되었고, 7회말에는 나카자와 신지의 2점 적시타로 점수 차를 벌렸다.
아다치 미쓰히로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후반을 제대로 뛰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5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선보였고, 3안타만을 허용하며 완벽투를 펼쳤다. 특히 9회초에는 스미 후지오, 와카마츠 츠토무, 오스기 가츠오를 모두 투수 땅볼로 잡아내며 전년도 시리즈 2차전에 이어 2경기 연속 완봉승(일본 시리즈 타이 기록)을 기록했다. 1976년 제7차전부터 이어진 시리즈 연속 무실점 기록도 21이닝으로 늘렸다.
경기 시간은 2시간 29분이었으며, 관중은 20,296명이 입장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78_3.html 공식 기록 관계](일본 야구 기구 페이지)
2. 2. 4. 4차전
10월 18일,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 열린 4차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데이브 힐튼의 9회 역전 2점 홈런에 힘입어 한큐 브레이브스를 6-5로 꺾었다.[3]경기는 한큐가 1회말 마르카노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얻고, 2회말에는 나카자와 신지, 이마이 유타로, 미노다 코지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추가하며 4-0으로 앞서나갔다. 5회말에도 미노다의 3루타를 시작으로 1점을 추가하며 야쿠르트 선발 야스다 타케시를 조기 강판시켰다.
야쿠르트는 6회초 반격에 나섰다. 후나다 카즈히데의 유격수 땅볼 때 2루 주자 나가오 타이켄의 센스있는 플레이로 오하시의 실책을 유도하며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이후 와카마쓰 쓰토무의 적시타, 오스기 가쓰오와 마니엘의 내야 땅볼, 스기우라 도루의 적시타로 1점 차까지 추격했다.
9회초, 야쿠르트는 1사 후 미즈타니 신타로가 안타로 출루했다.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은 대타 이세 타카오를 기용하고 미즈타니에게 도루 사인을 냈지만, 미즈타니는 도루에 실패했다.[14] 그러나 이세가 내야 안타로 출루하며 기회를 이어갔다. 한큐의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마이 유타로는 완투 의지를 밝혔고, 우에다는 이를 받아들였다.[15] 다음 타자 힐튼은 초구를 노려 좌측 럭키존으로 넘어가는 역전 2점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를 뒤집었다.[3]
9회말 야쿠르트는 마무리 마쓰오카 히로무를 투입해 경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한큐는 선두 타자 가와무라 겐이치로가 안타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가 1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후쿠모토가 1루에 생존했다. 미노다의 타석 때 후쿠모토가 도루를 시도했지만, 마쓰오카의 빠른 퀵 모션과 오야 아키히코의 정확한 송구로 저지당했다.[16] 마쓰오카는 마지막 타자 미노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5점 차를 뒤집은 야쿠르트의 극적인 승리는 시리즈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3] 한편, 한큐의 우에다 감독은 이 경기의 투수 교체 실패를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꼽았으며, 당시 구원 투수였던 야마다 히사시는 "우에다 감독의 실패"라고 평가했다.[5][17] 힐튼의 홈런은 양 팀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단 한 개의 공으로 경기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5][6][18][19]
2. 2. 5. 5차전
10월 19일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입장자: 18,298명)1 | 2 | 3 | 4 | 5 | 6 | 7 | 8 | 9 | 득점 | 안타 | 에러 | |
---|---|---|---|---|---|---|---|---|---|---|---|---|
야쿠르트 | 2 | 0 | 0 | 0 | 0 | 1 | 0 | 1 | 3 | 7 | 14 | 0 |
한큐 | 0 | 0 | 0 | 1 | 0 | 0 | 1 | 1 | 0 | 3 | 5 | 0 |
- '''승리 투수''': 이하라 신이치로(1-0)
- '''패전 투수''': 야마다 히사시(1-1)
- '''세이브''': 마쓰오카 히로무(2S)
- '''홈런'''
- * 야쿠르트: 와카마쓰 쓰토무(8회 1점), 오스기 가쓰오(9회 3점)
- * 한큐: 바비 마르카노(8회 1점)
경기 시간: 3시간 9분
한큐의 선발은 4일 간격으로 등판한 야마다였다. 야쿠르트의 선발은 마쓰오카라는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카지마 겐이치였다.[21] 야마다는 초반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야쿠르트 타선에 1회부터 공략당해 오스기의 2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허용했다. 한편, 한큐는 3회까지 야쿠르트의 선발 카지마에게 노히트에 묶여 있었지만, 4회에 드디어 카지마를 공략하여 2사 만루에서 두 번째 투수 이하라의 폭투로 1점을 만회했다. 6회 초에 야쿠르트가, 7회 말에 한큐가 각각 1점을 추가했다. 8회 초에 야쿠르트가 와카마쓰의 우월 홈런으로 점수를 벌리자, 한큐도 그 이닝 말에, 연투인 마쓰오카로부터 마르카노가 좌월 홈런을 쳐 4-3으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9회 초, 야쿠르트는 마쓰오카의 내야 안타로 만든 2사 1, 2루에서 오스기가 3점 홈런을 터뜨려 7-3으로 달아났다. 야마구치가 투입되지 않았고, 야마다를 끝까지 던지게 한 한큐와는 대조적으로, 연투한 마쓰오카의 활약으로 야쿠르트가 먼저 챔피언 결정전에 1승을 남겨두게 되었다.
야쿠르트 벤치는 이 경기를 처음부터 계투로 풀어나갈 계산이었다.[21] 전날 경기 종료 후, 이날 선발 후보를 4명으로 추린 후, 그 중에서 이 날 경기 전에 코바야시 구니오와 카지마 2명으로 압축해 카지마의 선발을 결정했다.[21] 야쿠르트 벤치로서는 카지마가 한큐의 타순이 한 바퀴 돌 때까지만 버텨주면 된다고 계산했지만, 카지마는 4회 1사까지 노히트라는 예상 외의 호투를 보여주며 야쿠르트의 계투 운용을 수월하게 했다.
2. 2. 6. 6차전
10월 21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978년 일본 시리즈 6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는 나카자와 신지(3회 3점), 시마타니 긴지(5회 1점), 버니 윌리엄스(5회 1점), 후쿠모토 유타카(5회 2점)의 홈런을 앞세워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12-3으로 크게 이겼다.[22]선발 투수 시라이시 시즈오는 9이닝 동안 3실점 5피안타로 완투승을 거두며 한큐의 승리를 이끌었다.[22] 야쿠르트 선발 스즈키 야스지로는 3회에 볼넷으로 무너진 후 시마타니 긴지, 윌리엄스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고, 나카자와 신지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는 등 6실점하며 부진했다.[23] 5회에는 니시이 테츠오가 시마타니 긴지, 윌리엄스, 후쿠모토 유타카에게 3개의 홈런을 맞는 등 5실점 하였다.[23]
야쿠르트 타선은 후나다 가즈히데가 5회에 2점 홈런을 쳤지만, 시라이시 시즈오를 공략하지 못하고 3득점에 그쳤다.
이 경기는 3시간 35분 동안 진행되었으며, 44,95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한큐는 2차전을 제외한 5경기에서 완투를 기록했다.
[https://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78_6.html 경기 상세 결과] (일본 야구 기구)
2. 2. 7. 7차전
10월 22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1978년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한큐 브레이브스'''를 4-0으로 꺾고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1]선발 마쓰오카 히로무는 9이닝 동안 7안타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두며(2승 2세이브) 야쿠르트의 승리를 이끌었다.[24] 반면 한큐 선발 아다치 미쓰히로는 5회 1/3이닝 동안 1실점(5회말 힐튼에게 적시 내야 안타 허용) 후 강판되었다.[24] 아다치의 시리즈 연속 무실점 기록은 25이닝에서 멈췄다.
6회말, 야쿠르트 오스기 가쓰오가 아다치에게서 좌측 폴대 상단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을 쳤다.[2][18][19][25][26][27][28] 이 홈런은 폴대 위를 통과했는지에 대한 판정 논란이 있었고,[11][29] 당시 비디오 판독이 없었기에[11][30] 심판 판정에 대한 한큐의 항의가 이어졌다. 한큐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맹렬하게 항의하며 선수단을 철수시키기도 했으나,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 항의로 인해 경기는 1시간 19분(14시 54분부터 16시 13분) 동안 중단되었으며, 이는 일본 시리즈 사상 최장 시간 중단 기록이다.
항의로 인해 경기가 중단된 사이, 한큐는 아다치 대신 마쓰모토 마사시를 투입했으나, 야쿠르트 찰리 매뉴엘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3-0으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18][19][26] 8회말에는 오스기가 야마다 히사시를 상대로 또 하나의 솔로 홈런(2타석 연속)을 추가하며 4-0을 만들었다.[26]
결국 야쿠르트가 4-0으로 승리하며, 구단 창단 29년 만에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33] 마쓰오카는 완봉승으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마지막 타자 이노우에 오사무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되었다.[33]
경기 종료 후 스왈로스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은 헹가래를 받았다.
이 경기는 데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45.6%, 최고 61.5%(간토 지구)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26]
투수 | 기록 |
---|---|
마쓰오카 히로무 | 9이닝 7피안타 완봉승 |
아다치 미쓰히로 | 5 1/3이닝 1실점 |
마쓰모토 마사시 | 2/3이닝 1실점 |
야마다 히사시 | 2이닝 1실점 |
선수 | 기록 |
---|---|
오스기 가쓰오 | 6회 솔로 홈런, 8회 솔로 홈런 |
찰리 매뉴엘 | 6회 솔로 홈런 |
D. 힐튼 | 5회 적시 내야 안타 |
1978년 일본 시리즈 7차전 6회말,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오스기 가쓰오가 친 타구가 좌측 폴대를 넘어가는 홈런으로 판정되었다.[2][18][19][25][26][27][28] 그러나 한큐 브레이브스 측은 이 타구가 파울이라고 주장하며 1시간 19분 동안 항의했다.[25][26] 이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장 시간 항의로 기록되었다.[25]
MVP는 오스기 가쓰오(야쿠르트)가 선정되었다. 감투상은 아다치 미쓰히로(한큐), 타격상은 시마타니 긴지(한큐), 최우수 투수상은 마쓰오카 히로무(야쿠르트)에게 돌아갔다. 기능상은 데이브 힐튼(야쿠르트), 우수 선수상은 와카마쓰 쓰토무(야쿠르트)가 수상했다.
3. 논란: 7차전 홈런 판정 논란
당시 비디오 판정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타구의 판정이 어려웠다.[11][30] 좌익 선심 토미자와 히로야는 폴 위를 통과했다며 홈런을 선언했지만,[18][30] 비디오를 본 한큐 측은 파울이라고 반론했다.[19][26][25] 한큐의 미노다 고지는 타구가 폴의 간판을 가로질러 파울이 되었다고 확신하고 항의했다.[26] 우에다 감독도 즉시 항의에 참여하여[18][26][28] 파울을 주장했지만, 토미자와 선심은 홈런임을 굽히지 않았다.[32]
구심 야마모토 후미오는 중재에 나섰으나, 당시 규칙상 선심의 판정을 뒤집을 수 없었다.[32] 우에다 감독은 심판 교체를 요구했지만,[32] 공인 야구 규칙 9.02(d)에 따라 심판원 변경은 불가능했다.[32] 가네코 사토시커미셔너까지 나서서 설득한 끝에[11][30][32] 항의는 종료되었고, 경기는 재개되었다.
항의로 인해 아다치 미쓰히로가 강판되고 마쓰모토 마사시가 구원 등판했지만, 매니엘에게 홈런을 허용했다.[18][19][26] 결국 야쿠르트가 승리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후 우에다 감독은 항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18][26] 다음 날 마이니치 신문에는 타구가 파울이었다는 목격담이 실리기도 했다.[34] 후쿠모토 유타카는 홈런은 오심이었지만, 항의가 너무 길어져 졌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했다.[19]
4. 주요 선수 및 감독
4. 1. 수상 선수
MVP는 오스기 가쓰오(야쿠르트)가 선정되었다. 감투상은 아다치 미쓰히로(한큐), 타격상은 시마타니 긴지(한큐), 최우수 투수상은 마쓰오카 히로무(야쿠르트)에게 돌아갔다. 기능상은 데이브 힐튼(야쿠르트), 우수 선수상은 와카마쓰 쓰토무(야쿠르트)가 수상했다.
4. 2. 감독
wikitable
5. 미디어 중계
5. 1. 텔레비전 중계
이번 시리즈부터 텔레비전 중계는 센터 카메라 방식이 도입됐다.- 1차전(10월 14일): 후지 TV ≪FNN 계열≫, 해설: 야마다 유지, 오카모토 이사미, 도요다 야스미쓰, 게스트 해설: 야마모토 고지(히로시마), 스즈키 게이지(긴테쓰)
- 2차전(10월 15일): '''니혼 TV''' ≪NNN 계열≫, 해설: 아카기 타카오, 야마우치 카즈히로, 게스트 해설: 노무라 가쓰야(롯데, 이 해 오프에 세이부로 이적)
- 3차전(10월 17일): '''간사이 TV''' ≪FNN 계열≫, 해설: 시오타 토시유키, 오카모토 이사미, 아라카와 히로시, 게스트 해설: 스즈키 게이지
- 4차전(10월 18일): '''간사이 TV''' ≪FNN 계열≫, 해설: 마쓰모토 노부아키, 오카모토 이사미, 아라카와 히로시, 게스트 해설: 고바 타케시(히로시마 감독) / '''NHK 종합''', 해설: 하사마 마사오, 가토 스스무, 후지타 모토지
- 5차전(10월 19일): '''간사이 TV''' ≪FNN 계열≫, 해설: 시오타 토시유키, 오카모토 이사미, 아라카와 히로시, 게스트 해설: 고바 타케시
- 6차전(10월 21일): '''후지 TV''' ≪FNN 계열≫, 해설: 모리야마 타케시, 오카모토 이사미, 도바시 마사유키, 게스트 해설: 고바 타케시, 스즈키 게이지
- 7차전(10월 22일): '''후지 TV''' ≪FNN 계열≫, 해설: 야마다 유지, 오카모토 이사미, 도요다 야스미쓰, 게스트 해설: 스즈키 게이지, 리포터: 모리야마 타케시(야쿠르트 측), 바바 테츠시(한큐 측)
7차전의 시청률은 일본 시리즈 사상 최고인 평균 45.6%, 최고 61.5%(간토 지구)였다.
후지 TV는 계열국이 아닌 완전 자체 제작으로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방송권을 획득했다. 2차전은 야쿠르트 주최·주관 경기의 방송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니혼 TV가 중계했는데, 이는 야쿠르트 주관 경기가 진구 구장에서 열릴 수 없었고, 후지 TV가 월드 시리즈 중계를 편성했기 때문이다.[36] TV 아사히는 야쿠르트 주최·주관 경기의 방송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권리를 획득하지 못했다. TBS는 1975년을 마지막으로 야쿠르트 주최·주관 경기 방송에서 철수했고, 한큐 주최·주관 경기도 제한적으로 방송했기 때문에 권리를 획득하지 못했다.
5. 2. 라디오 중계
1978년 일본 시리즈의 라디오 중계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NHK 라디오 제1은 1차전에서 가와카미 테츠지, 가토 스스무, 2차전에서 쓰루오카 가즈토, 후지타 모토시, 3차전에서 쓰루오카 가즈토, 후지타 모토시, 4차전에서 쓰루오카 가즈토, 가와카미 테츠지, 5차전에서 가토 스스무, 가와카미 테츠지, 6차전에서 쓰루오카 가즈토, 후지타 모토시, 7차전에서 시마무라 토시하루 해설로 중계했다.
- TBS 라디오 (JRN)는 1차전에서 마키노 시게루 해설, 노무라 가쓰야 게스트 해설, 2차전에서 마키노 시게루, 타미야 겐지로 해설, 3차전에서 미야케 사다오 실황, 마키노 시게루, 요네다 테츠야 해설, 4차전에서 마키노 시게루, 요네다 테츠야 해설, 5차전에서 미즈타니 가쓰미 실황, 마키노 시게루, 요네다 테츠야 해설, 6차전에서 마키노 시게루 해설, 노무라 가쓰야 게스트 해설, 7차전에서 와타나베 겐타로 실황, 마키노 시게루 해설, 노무라 가쓰야 게스트 해설로 중계했다.
- 분카 방송은 1차전에서 벳쇼 다케히코, 쓰지 요시키, 2차전에서 벳쇼 다케히코, 아라카와 히로시, 3차전에서 토야 마사토 실황, 벳쇼 다케히코, 쓰지 요시키 해설, 4차전에서 고야마 마사아키 해설, 기누가사 사치오, 스즈키 게이지 게스트 해설, 5차전에서 벳쇼 다케히코, 쓰지 요시키 해설, 6차전에서 벳쇼 다케히코, 아라카와 히로시 해설, 7차전에서 나카타 히데사쿠 실황, 벳쇼 다케히코, 쓰지 요시키 해설로 중계했다. 분카 방송은 라디오 오사카와 함께 중계하거나, NRN・아사히 방송 제작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 닛폰 방송(NRN)은 1차전에서 후카자와 히로시 실황, 세키네 준조 해설, 금전정일 게스트 해설, 2차전에서 비와자카 아키라 실황, 곤도 가즈히코 해설, 스즈키 게이지 게스트 해설, 3차전에서 하나이 유 해설, 사사키 쿄스케, 이케타니 고지로 게스트 해설, 4차전에서 후카자와 히로시 실황, 도바시 마사유키, 곤도 가즈히코 해설, 5차전에서 미나가와 무쓰오 해설, 미즈타니 미오 게스트 해설, 6차전에서 후카자와 히로시 실황, 세키네 준조 해설, 무라타 쵸지 게스트 해설, 7차전에서 비와자카 아키라 실황, 도바시 마사유키, 곤도 가즈히코 해설로 중계했다. 닛폰 방송은 라디오 오사카와 함께 중계하거나, NRN・아사히 방송 제작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6. 평가 및 영향
1978년 일본 시리즈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창단 첫 우승으로,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7차전의 홈런 판정 논란은 오랫동안 회자되며, 스포츠 경기에서 판정의 중요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26][34][27][19][6][7][30][32]
7차전에서 오스기 가쓰오의 홈런 판정을 두고 한큐 브레이브스의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은 1시간 19분 동안 항의했다.[18][26] 이는 당시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장 시간 항의로 기록되었으며, 우에다 감독은 이 항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기 후 사임을 발표했다.[18]
마이니치 신문은 "절대 파울. 30cm 정도 폴의 바깥쪽을 통과해 왔다"는 목격담을 보도했고,[34] 니노미야 기요스미는 "많은 선수, 관계자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어디서 어떻게 봐도 고라쿠엔 구장의 레프트 폴의 왼쪽, 즉 파울이었다"고 언급했다.[27]
당시 한큐 선수였던 후쿠모토 유타카는 43년 후 인터뷰에서 "폴 아래로 갔더니, 야쿠르트 팬들도 '파울이다'라고 했다"며 오심이었다고 회상했다.[19] 그러나 그는 홈런 판정 자체보다는 우에다 감독의 긴 항의로 인해 선수들의 투쟁 본능이 식어버린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19]
반면, 야쿠르트의 스기우라 쿄는 46년 후의 회상에서 "자신의 타석을 대비해서 벤치에서 보고 있었는데, 저는 파울로 보였습니다"라고 증언했다.[6]
선발 투수였던 마쓰오카 히로시는 긴 항의 시간이 오히려 자신에게 휴식 시간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우에다 감독의 항의에 대해 "야구 인생을 걸고 항의에 임했다. 그야말로 승부사"라고 평가했다.[7][30]
당시 구심이었던 야마모토은 36년 후 인터뷰에서 "확실히 미묘한 타구였습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야쿠르트의 승리를 축하하며 특히 마쓰오카의 투구를 극찬했다.[32]
1989년 후지TV 계열 '프로야구 뉴스'에서 우에다 감독과 오스기의 대담이 이루어졌는데, 오스기는 자신의 비디오에서는 페어였다고 주장했고, 우에다는 "관 속에 들어가도 그 볼은 파울이었다"고 반박했다.[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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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709回 「誤審」を救った大杉勝男のユーモ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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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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